일제강점기 단군신화를 연구한 일본인들은 단군신화의 역사성을 부정하는데, 특히 환인과 환웅에 대해서는 본래의 단군신화에 덧붙여진 가작으로 취급하였다. 환인·환웅에 관한 내용이 불교와 도교의 관념에 의해 가작되었다는 가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. 이 글에서는 그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.
白鳥庫吉은 단군신화의 환인은 불교 경전의 석제환인을 줄인 용어이고, 특히 불설입세아비담론에서 석제환인의 아들 전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구조가 차용되었다고 하였다. 그 외에도 잡아함경, 대지도론에 등장하는 석제환인에 관한 부분을 인용하여 근거로 하였다. 그러나 그 불교 경전의 내용구조는 단군신화의 ‘환인-환웅-단군’으로 구성된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. 불설입세아비담론은 559년에 한역되었는데, 단군신화는 그 이전인 장수왕 때 만들어졌다고 하여 그 주장이 모순적이다. 小田省吾·高橋亨은 서산대사 휴정의 청허집에 인용된 妙香山法王臺金仙臺二菴記에서 묘향산의 산신으로 등장하는 ‘석제환인’을 강조하여 단군과의 관계를 설명하려 하였다. 그러나 실제 그 문헌을 살펴보면, 석제환인은 묘향산의 여러 산신 중 하나로 등장하여, 그것만을 강조하여 단군과의 관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. 今西龍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제석신앙에 의해 단군신화에 제석 즉 석제환인에 관한 내용이 추가되었다고 하였다. 그러나 제석신앙은 단지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던 것이 아니라 7세기 신라와 백제에서도 확인된다. 그리고 신라·고려시대의 제석신앙은 토착화되어, ‘제석’은 불교의 석제환인보다도 일반적인 ‘하늘님’, ‘상제’의 의미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.
단군신화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것 외에도 제왕운기, 세종실록지리지, 묘향산지 등 여러 문헌에 실린 다른 내용의 단군신화가 있다. 연구의 시작은 그 다양한 단군신화에 대한 조사 및 각각의 고유성에 대한 분석이 우선인데, 그보다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만 치중하여 그 외의 것은 후대의 조작으로 취급하였다. 여러 단군신화의 차이는 환웅시대의 이야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. 이는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갖는 중요성을 보여준다. 환웅과 관련된 내용의 고유성 및 역사성을 인정하는 시각에서 접근할 때, 환웅은 고조선의 역사 안에서 원시 제정일치 사회의 수장을 직접적으로 대상화 한 존재라 할 수 있다. 따라서 단군뿐만 아니라 환웅 역시 역사적 존재로 설정해 볼 수 있다.